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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비극)임철규, 소포클레스 '아이아스' 독서록



임철규, 『그리스 비극: 인간과 역사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 제2부 1장, 한길사, 2018
소포클레스(천병희 옮김), 「아이아스」,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총서), 숲, 2008

(임철규)제2부 소포클레스 1장 『아이아스』

▻ 『아이아스』는 미쳐버린 영웅 ‘아이아스’가 밤새 벌인 광기의 가축 살인극, 처참한 도살의 현장에 동이 트면서 시작된다. 트로이아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전사한 뒤, 그가 남긴 무기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진다. 아킬레우스의 무기를 가질 자격이 있는 가장 빼어난 전사는 ‘오뒤세우스’인가? ‘아이아스’인가? ► 오뒤세우스 선택! ► 분노한 아이아스가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인 (1)아가멤논과 (2)메넬라오스, 자기 대신 아킬레우스의 무기를 갖게 된 (3)오뒤세우스, 그리고 오뒤세우스를 선택한 (4)지휘관들을 죽이기 위해 막사로 향한다. ► 아테나 여신이 나타나 아이아스를 미치게 한다. ► 미친 아이아스가 가축 떼를 그리스군으로 착각하고 닥치는 대로 죽인다. 오뒤세우스는 아테나가 이와 같은 아이아스의 모습을 자신에게 보여주자 자신과 같이 한낱 ‘덧없는 그림자’(kouphos skia)에 지나지 않는 인간 아이아스에게 깊은 연민을 느낀다. ► 아테나에 의해 제정신으로 돌아온 아이아스는 자신이 저지른 수치스러운 일을 깨닫고 ‘큰 소리로 울부짖는 황소’처럼 포효한다. ‘명예롭게 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명예롭게  죽겠다.’ 아이아스의 노예이자 첩인 (5)테크메사**가 살아서 자신과 아들 (6)에우뤼사케스를 보호해달라고 호소한다. ► 아이아스는 이복동생 (7)테우크로스에게 자기 아들을 아버지 텔라몬이 사는 고향으로 데려가라는 유언을 전하려 함(코로스). 아들 에우뤼사케스에게 자신의 방패를 주고 나머지 무기를 자신과 함께 묻으라고 명령함. 테크메사와 코로스는 진정하라고 간청한다. ► 아이아스의 위장발언: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하나 나의 확고한 고집도 변할 수 있다.’ ‘내가 죽거든 테크메사와 에우리사케스가 어떤 운명에 처하겠는가. 소중한 이들을 남겨두고 죽을 수 없다.’ ‘나의 허물을 물로 씻고 아테나의 분노를 가라앉히겠다.’ ‘헥토르에게 선물로 받은 칼을 인적 없는 땅에 묻겠다.’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지휘에 따르겠다.’ 코로스는 안도한다. ► 테우크로스의 전령이 칼카스의 예언을 전한다. “아이아스가 오늘 밖으로 나가면 파멸할 것이다.” 아이아스가 트로이아로 출정할 때 자신이 신들의 도움 없이도 승리할 수 있다고 장담한 일, 전장에서 아테나 여신의 도움을 거절한 일로 아테나 여신의 분노를 샀는데, 그 분노가 하루만 유효하니 하루만 막사 안에 머무른다면 신의 분노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것. 테크메사와 코로스가 아이아스를 찾아 나선다. ► 해변에서 자살하는 아이아스: 헥토르의 칼을 땅에 꽂고 신들에게 마지막 기원을 전한다. (제우스여!)테우크로스가 가장 먼저 나의 시신을 발견하여 명예롭게 매장되도록!, (헤르메스여!)내가 단숨에 죽을 수 있도록!, (분노의 여신들이여!)아트레우스의 아들들을 벌하시기를!, (태양신 헬리오스여!)나의 죽음을 양친에게 알려주시기를!, 마지막으로 태양빛과 고향 살라미스의 신성한 평원과 영광스러운 아테나이와 트로이아 강이여, 안녕! 헥토르의 칼로 자살함. ► 아이아스의 매장 문제: 코로스, 테크메사, 테우크로스, 에우리사케스, 메넬라오스, 아가멤논, 오뒤세우스 등장. 메넬라오스, 매장 반대: ‘그리스군의 결정을 어기고 그리스군 전체를 죽이려 한, 트로이아인보다 “더 나쁜 적”이다.’ 군과 국가의 명령과 결정에 대한 복종은 절대적이어야 한다. 테우크로스, ‘아킬레우스의 무기를 오뒤세우스에게 넘겨준 투표 결과는 부정한 조작이었다!’ 메넬라오스,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매장은 허용하지 않겠다고 협박하고 퇴장한다. 테크메사가 에우뤼사케스에게 ‘내가 매장을 준비할 동안 아버지의 시신을 지키고 있으라.’고 당부하고 떠나려할 때, 메넬라오스의 형 아가멤논 등장. 매장에 반대한다. 결국 오뒤세우스가 등장하여 아가멤논을 설득한다. ► 코로스와 테우크로스, 에우리사케스에 의해 장례가 치러지며 작품이 끝난다. 
**테크메사: 프리기아의 공주였던 테크메사는 그리스인들의 프리기아 침공 때, 아이아스에게 끌려왔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아이아스에게 절대적 순종과 애정을 바쳤다.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 이전의 아이아스
▻ 호메로스의 서사시① 『일리아스』: 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 다음가는 2인자’, ‘아킬레우스의 빛에 가려진 인물’, ‘육중한 방패를 든 거인’으로 묘사됨. 다른 영웅들에 비해 주목을 덜 받음. 아이아스는 지극히 큰(mega) 사람(거인)이고, ‘성벽 같은’ 거대한 방패를 들고 그리스인을 지키는 인물, 그리스인들의 ‘거대한’ 성벽이면서도 언제나 아킬레우스 다음가는 영웅이었다.
▻ 호메로스의 서사시② 『오뒤세이아』: 아이아스의 정체성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계에서 오뒤세우스의 방문을 받은 아이아스의 망령은 아킬레우스의 무기를 오뒤세우스에게 넘겨준 투표결과에 여전히 승복하지 않으면서 원한을 드러낸다. 오뒤세우스는 자책하면서 ‘저주받은 무기’로 인한 분노를 거두기를 간청한다. 아킬레우스 다음가는 훌륭한 전사였고, ‘생김새와 행동’에서 다른 그리스인을 능가했던 아이아스의 죽음이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아킬레우스의 죽음만큼이나 끊임없이 애도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전한다. 아이아스의 망령은 분노가 풀리지 않은 듯,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고’ 그의 곁을 떠난다.
▻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는 기본적으로 호메로스의 아이아스를 그대로 이어받았으며, 호메로스 이후의 서사시와 서정시를 다양하게 참조하여 창조된 작품이다. 
▻ 소포클레스가 아이아스의 자살이라는 모티프를 끌어온 곳은 『일리아스』의 후속 작품들로 알려진 일군의 서사시로 보인다. 현존하지 않는 작자 미상의 ‘소(小)일리아스’나 밀레투스의 아르크티누스의 작품으로 알려진 ‘아이티오피스’ 등은 『오뒤세이아』에서와 달리 아이아스의 죽음을 다루고 있으며 두 작품에서 모두 아이아스가 동틀 무렵 자살했다고 나온다.
▻ 서정시인들의 아이아스도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알카이오스는 아이아스가 크로노스의 아들인 제우스 왕의 후손이자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한 전사들 가운데서 아킬레우스 다음가는 빼어난 전사라고 노래한다. 핀다로스는 그리스인들이 오뒤세우스의 기만적인 말솜씨에 현혹되어 아이아스의 용맹함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해 아킬레우스의 무기를 오뒤세우스에게 넘겨줌으로써 아이아스를 자살에 이르게 했다고 함. 핀다로스는 아이아스가 ‘말 없는 실천자’였고, 오뒤세우스는 ‘말만 내세우는 허풍쟁이’였다고 함. 소포클레스가 핀다로스를 수용한 건 아니지만 둘의 관계를 조명한 점으로 보아 참조했을 것임. 『아이아스』가 오뒤세우스를 긍정적으로 해석한 것이 핀다로스에 대한 소포클레스의 응답이라는 주장도 있다.
▻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와 호메로스의 아이아스 사이의 결정적 단절: 영웅시대 에토스(ethos)의 표상으로서의 아이아스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뒤세이아』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으나, 영웅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자살’ 모티프는 호메로스 이후의 서사시와 서정시에서 차용된 것이다. 영웅 아이아스가 호메로스의 영웅시대가 허용하지 않는 자살을 선택했다는 점이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를 이해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 가장 비영웅적인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한 영웅의 이야기로 한 시대가 상징했던 가치의 죽음과 그 가치의 죽음 아래서 울부짖는 인간의 존재론적 비극을 들려준 작품. 

#영웅의 운명, 그리고 아이아스의 선택
▻ “아이아이”(aiai), 고통스러운 울부짖음: 아킬레우스의 무기를 오뒤세우스에게 돌아가게 한 부당한 판결에 대한 분노(cholos)를 견디지 못해 아가멤논 등의 옛 동료들을 죽였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가축 떼를 도륙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이아이, ... 누가 내 이름이 나의 슬픈 운명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아이아이’(aiai)는 고통과 비애, 한탄 등을 나타내는 간투사. 코로스는 ‘불운의 이름을 가진 아이아스’라고 일컫는다. 아이아스는 ‘고통(pathos)의 존재이자 불운의 존재이다.’
▻ 명예: 명예는 영웅시대 영웅에게 최고의 덕목. 모든 불가피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아이아스는 가장 빼어난 전사로서의 자신의 명예를 더럽힌 수치스러운 행위를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신들과 그리스인들에게 ‘더 이상 가치 없는’ 존재요, 조롱당하는 ‘짐승’으로 전락한 아이아스, ‘신들, 그리스인들, 트로이아인들, 심지어 트로이아의 들판까지도 나를 혐오하고 있다!’ 
▻ 수치문화: 호메로스 영웅시대는 ‘수치문화의 시대’로 규정된다. 영웅시대의 가치체계는 수치 없는 삶에 토대를 두고 있었고, 수치 없는 영웅들의 삶은 가장 영웅다운 죽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아테나는 오만하고 불경한 아이아스를 누구보다 ‘훨씬 지혜로운 자’라 일컬었고,  트로이아의 영웅 헥토르는 신이 아이아스에게 큰 체구와 힘은 물론 ‘지혜’까지 주었다고 칭찬했다.(『일리아스』) 하지만 이제 신과 인간, 자연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된 아이아스에게 ‘명예’는 없다. 영웅은 명예대신 ‘수치’(atimia)를 짊어졌으니, 이제 그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 운명(moira): 반드시 죽는다, 이것이 모든 인간에게 할당된 운명이다. ‘모이라’는 ‘할당받다’라는 의미의 동사(meiromai)에서 비롯된 수동형 명사로, 원래 의미가 ‘할당된 것’,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다양한 의미로 쓰이지만, 호메로스는 보통 죽음과 연관된 의미로 사용했다. 인간은 불멸의 신들과 달리 반드시 죽는(죽을 수밖에 없는), 필멸의 존재이며, 이것이 곧 인간의 ‘모이라’이다.호메로스 영웅시대의 주인공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운명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죽음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즉 ‘어떻게 죽을 것인가’였다. 운명을 극복하는 방식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명예롭게 죽는 것, 영광스러운 죽음을 통해 얻은 명성으로 영원히 사는 것이었다. 
▻ 명성은 불멸성의 대리자: ‘우리가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을 수 있다면 이렇게 전쟁터에서 영광과 명예를 얻기 위해 선두 대열에 서서 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전장에서 싸우는 것은 죽음을 통해 불멸의 명성을 얻어 불멸의 존재가 되기 위해서다.’ 사르페돈이 글라우코스에게(『일리아스』) 최고의 선은 사회의 공적 존경(time): 호메로스의 영웅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사회가 자신들의 행위를 어떻게 규정하고 평가하는가였다. 내면의 소리도 아니고, 신도 아닌, 타인의 시선, 즉 공적인 눈이 그들의 행위를 규정했다. 타인의 눈에 부끄럽지 않은 삶, 수치 없는 삶이 호메로스 주인공들이 갈구하던 영웅적 삶이었다. 아이아스에게 명예로운 죽음을 통한 불멸의 가능성은 봉쇄되었다. 타인의 눈에 수치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 수치스러운 삶: 트로이아 전쟁을 이끄는 ‘아트레우스의 아들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를 버리고 아버지 텔라몬이 있는 고향으로 갈 수도(명예를 잃고 빈손으로..),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에게 이로울 뿐이라) 트로이아인들과 싸우다 장렬히 죽을 수도 없다.아버지: 아버지를 수치스럽게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아들의 삶의 원칙이자 본질. 아버지는 아들로 하여금 언제나 자신의 행동을 검열하게 하는 내면화된 타자, ‘내부의 강력한 검열관’이고. ‘아버지의 시선은 가차없이 심판하는 심문자’다.  글라우코스의 아버지 히폴로코스,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일리아스』). 텔라몬은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빼어난 전사”(서정시인 알카이오스)로, 아이아스의 내면화된 타자이자, 강력한 검열관임. 
▻ 아이아스, “고귀한 사람은 명예롭게 살든가, 아니면 명예롭게 죽어야 한다.” 명예롭게 살 수 없다면 명예롭게 죽는 길밖에 없다. ‘암흑’(skotos)이 ‘나의 빛’(emon phaos)이다. 『일리아스』의 아이아스는, 그리스군이 트로이아의 헥토르의 맹렬한 공격에 거의 패배하게 되었을 때, 제우스에게 ‘우리의 죽음이 당신의 기쁨이 된다면, 우리들을 ‘빛 속에 죽여달라’고 간청했다. 호메로스에서는 빛이 암흑의 반대였으나,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에게는 암흑이 바로 빛이다. 죽음이라는 암흑만이 유일한 빛이다. 
▻ 아이아스가 테크메사의 친절을 배신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보호하지 못할 선택을 감행한 까닭은? 최고의 가치인 명예를 잃었다는 것은 자기존재, 자기존재의 이유, 자기존재의 가치를 전부 잃었다는 뜻. 불멸의 영광을 얻을 기회를 상실한 그에게는 돌아갈 길도 나아가야 할 길도 없다. 자살은 잃어버린 명성을 부분적으로라도 되찾으려는 종국적인 시도, 절망적인 시도이다. 

#아이아스의 자살의 의미
▻ 자살 직전의 ‘위장발언’(Trugrede): 고대 그리스문학 중 어떤 문장도 이 위장발언만큼 논의를 불러일으킨 것이 없다. 아이아스는 왜 이런 발언을 했는가? 그는 진심으로 신을 섬기고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인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와 화해할 뜻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끝내 자살을 결행한 이유는? 테크메사와 코로스를 속이려고? 자신의 독백이었나? 등등. 
▻ 위장발언에 담긴 아이아스의 ‘시간’에 대한 인식: 아이아스는 아낙시만드로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시간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반복한다. 시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도 하고,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도 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시간 속에 고정된 것이란 없다. 시간은 가장 강하고 가장 무서운 것들로 하여금 그것과 상반되는 다른 것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한다. 겨울이 여름에게, 낮이 밤에게, 폭풍이 고요에게, 잠이 깨어남에게 자리를 내어주듯이… 모든 것을 변하게 하는 시간이야말로 인간의 삶과 운명을 주관하는 재판관이다. 아이아스는 시간이 야기하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 친구는 끝까지 친구여야 하고 적은 끝까지 적이어야 하는 영웅시대의 정의가 우롱당하는 사태를 참을 수 없다. 소포클레스의 다른 작품에서는 찾을 수 없는 분노와 원한에 사무치는 발언이다. 
▻ 시간, 헥토르와 아이아스: 헥토르는 적인 아이아스에게 은못을 박은 칼과 칼집을, 아이아스는 적인 헥토르에게 자줏빛 혁대를 선물로 주었다. “적의 선물은 선물이 아니다.” 아이아스가 헥토르의 칼로 목숨을 끊는 행위에는 적과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있다. 불변의 원칙을 변하게 한 것이 시간이므로, 시간이 곧 적이다. 아이아스의 자살은 이 변화에 대한 도전이자 변화를 주도하는 시간이라는 적에 대한 도전이다. 아이아스는 ‘아에이’(aei. 항상, 언제까지나. cf. 우포테oupote, 한번도 ~하지 않다)의 원칙,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려는 자다. 아이아스는 아에이의 화신이다. 그러나 아에이는 불멸의 존재인 신에게 속하는 것인데! 
▻ 오뒤세우스, “살아 있는 우리 모두는 단지 이미지(eidolon), 덧없는 그림자(kouphos skia)에 지나지 않는다”. 
▻ “인간이 아닌 신처럼 생각하는” 아이아스에게 그가 인간임을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 아이아스는 아에이가 안간의 부질없는 욕망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시간의 흐름이 정지하는 하데스로 간다.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은 하데스뿐이다.” 하데스는 아에이의 왕국. 시간의 불가항력성을 증오한 아이아스는 죽음을 선택하여 시간을 중지시키고 변화를 중단하려 한다. 자신이 고수한 영웅시대의 정의, 도덕적 이상(arete)을 불멸화 절대화하려 한다. 
▻ “대량학살을 꾀하다 자폭한 일종의 고대 테러리스트”: 아이아스의 처참한 죽음은 그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힘차게 호흡하던 영웅시대가 마침내 시대가 표상했던 일체의 가치와 함께 종언을 고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오뒤세우스
▻ (극의 후반부) 매장을 반대하는 아트레우스의 아들들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아이아스는 ‘불복종자, 질서의 교란자’, 트로이아인보다 ‘더 나쁜 적’), 매장을 강행하려는 아이아스의 이복동생 테우크로스(‘헥토르의 질풍 같은 공격을 막아낸 이’), 마침내 매장을 관철시키는 오뒤세우스(연민과 존경의 감정. ‘한때의 과오로 한 인간을 평가해서는 안 되며, 삶 전체에 비추어 합당한 명예와 존경을 받게 해야.). 
▻ 오뒤세우스의 ‘호메로스적인 신념’: ‘죽음을 맞은 용감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것’, 즉 아이아스의 매장에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며, ‘신법을 파괴하는 일’이다. 오뒤세우스의 신념은 새로운 가치관과 충돌하지 않는다. 오뒤세우스는 아이아스가 위장발언에서 ‘영원한 친구는 없다’는 말로 예고한 새로운 가치관, 즉 우주의 본질은 불변이 아니라 ‘변화’에 있다는 가치관을 긍정하면서 아이아스가 죽음으로 저항했던 시간의 힘, 즉 변화를 체현하고 있다. 
▻ ‘현명한(sophos) 자’(코로스), 오뒤세우스는 영웅시대의 정의의 원칙, 즉 소중한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고, 적에게는 해를 가하라는 원칙을, 설득을 통해 해체한다. 설득은 민주제 아테나이의 강력한 정치적 무기. 오뒤세우스가 아이아스의 매장을 성사시킨 일은 설득의 새로운 시대가 육체와 폭력의 영웅시대를 이기고 승리함을 의미한다. 
▻ 말(言)의 인간 오뒤세우스: 소포클레스가 살았던 기원전 5세기 민주제의 아테나이는 오뒤세우스로 대변되는 현재와 아이아스로 대변되는 과거의 가치가 충돌하는 사회였으며, 행동이 아니라 말, 그 말의 수사와 복선이 좀 더 우위에 있는 오뒤세우스의 시대였다. 오뒤세우스는 말(言)의 인간, 호메로스의 전형적인 영웅들은 육(肉)의 인간들이다. 아이아스는 ‘전적으로 육체’다. 호메로스의 전형적인 영웅들의 말과 행동에는 오뒤세우스의 설득의 기술이 보여주는 위장, 술수, 복선 등을 위한 자리가 없다. 간계를 위한 자리도 없다. 
▻ 아이아스의 죽음은 육체의 죽음, 육체가 내포하는 모든 가치의 죽음, 나아가 영웅시대의 죽음이다. 아킬레우스의 무기가 오뒤세우스에게 주어진 것은 (...) 영웅시대가 종말을 고했다는 의미였다. but 영웅시대의 이상과 가치는 쉽게 소멸하지 않는다: 오뒤세우스가 매장에 참여하지 못함. 아이아스의 원한의 분출인 ‘검은 피’. 

#아테나와 아이아스
▻ 신의 보복: 왜 아테나는 아이아스를 파멸시키는가? 신들에 대한 아이아스의 오만. (1)아이아스는 신인 아테나를 조력자로 여긴다. 아테나에게 자신의 ‘쉼마코스’(전쟁 시 아테나이 편에 서는 소도시들. 동맹자)로 있으라고 ‘명령한다’. 아이아스는 인간처럼 생각/행동하지 않고 신처럼 생각/행동한다. (2)아이아스는 모든 존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신이 아니라 시간’이라 여긴다. 모든 영웅 가운데서 신의 도움을 거부하고 조롱하는 것은 오직 아이아스뿐. 아이아스는 ‘오만’(휘브리스hubris, 자신을 신만큼 높이고자 하는 태도나 행위. 틸리히)의 전형. 아이아스는 결국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의 손에 죽은 것이 아니라 신의 손에 죽은 것. 아테나는 ‘신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인 광기를 사용해 아이아스라는 한 인간을 자기가 아닌 존재, ‘자기 속의 타자’로 만든다. 소포클레스는 아테나를 통해 ‘오만한 그림자’, 즉 그림자라는 자신의 조건을 초월하려는 인간을 철저하게 응징힌다. 
▻ 아이아스는 소포클레스 비극 중에서 가장 호메로스적인 작품. but 신에 대한 아이아스의 태도는 호메로스적이지 않으며, 이는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다. 
▻ 고립과 손: 아이아스는 ‘홀로’(monos) 철저한 고독, 철저한 고립(‘소포클레스의 주인공들이 경험하는 ‘고립’이 소포클레스 비극의 관건이다.’ 카를 라인하르트) 속에서 온전히 자기 의지에 따라 저항의 에토스(ethos)를 토해낸다. 아이아스는 자신의 ‘손’(cheir)으로 모든 것을 홀로 선택하고 행동했다. cf. 하이데거, ‘사유와 손’: “손은 인간의 본질적 특징”이며 인간은 “손(Hand)을 통해 행동한다”. 사유는 하나의 활동이며 이른바 이론적인 활동인 사유는 언제나 이른바 실제적인 활동, 즉 손의 활동으로부터 나온다. 곧 “사유는 손의 모든 움직임을 인도하고 지탱한다.” 인간의 손은 인간의 사유와 의지를 실행하는 수단이다. 아이아스의 자살은 자신이 그림자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짓는 주체적인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영웅적 행위였다. 
▻ 소포클레스는 비극작가들 가운데 인간의 조건과 운명에 관해 가장 절망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소포클레스의 세계에는 어떤 화해도 화해의 중재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아스의 ‘검은 피’는 화해 불가능성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신과 인간은 결코 화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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