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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임철규, 아이스퀼로스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 독서록



임철규, 『그리스 비극: 인간과 역사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제1부 5장, 한길사, 2018
아이스퀼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천병희 옮김),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 『그리스 비극 걸작선: 『오이디푸스 왕』 외 3대 비극작가 대표선집-원전으로 읽는 순수 고전 세계』, 숲, 2010


(임철규)제1부 아이스퀼로스, 5장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 


◎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주인공으로 한 아이스퀼로스(기원전 525/4~456/5)의 ‘프로메테이아’ 3부작 중 현존하는 유일한 작품. 공연 연도 불확실.
◎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이 아니다”(1856년부터 제기된 주장). ‘운율이나 문체, 화법 무엇보다 제우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등을 고려할 때 아이스퀼로스의 것이 아니다.’  
◎ 3부작이라고 볼 경우, 둘째 작품일 것이다. 3부작의 순서는 일반적으로, 
◎ *(1)‘불의 운반자 프로메테우스’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하는 프로메테우스의 행위가 다루어지고 (2)‘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에서 그 대가로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에게 내린 고통이 다루어지고 (3)‘결박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에서 제우스의 변모와 그 결과로 프로메테우스가 고통에서 해방되는 이야기가 다루어졌을 것이다: “제우스의 뜻을 거역하고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대가로 벌을 받는다.”라는 논리. and “응징과 보복을 원칙으로 하는 신인 제우스가 연민의 감정가 이해, 설득을 통해 정의를 펼치는 신으로 변모하는 모습이 3부작의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이는 “제우스가 노여움을 풀고 그의 결박을 풀어준다는 신화 속 이야기와 일치한다!” 가장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주장. 
◎ **(1)‘결박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 - (2)‘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 - (3)‘불의 운반자 프로메테우스’라는 주장도 있다: “프로메티아(Promethia, 프로메테우스를 기리는 종교의식)가 횃불 릴레이 경주(lampadephoria)와 함께 치러진다! 이는 3부작의 마지막 내용을 주제로 한 것이다!”라는 주장.
◎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는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이다: 아이스퀼로스는 인간과 인간의 비극적 조건에 천착한 전형적인 비극 작가였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것도 인간과 인간의 조건에 대한 그의 비극적 인식이다.

◎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의 내용]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함으로써 제우스의 뜻을 거역한 프로메테우스는 그 대가로 ‘지구의 가장 먼 경계’에 있는 스퀴타스/스키디아 지역의 카우카소스 산정의 가파른 산정에 결박당한다. 제우스의 측근이자 힘과 폭력의 화신인 비아와 크라토스가 동원되고 헤파이스토스가 가담한다. 
◎ 물의 신 오케아노스의 딸들로 구성된 코로스가 프로메테우스를 방문하고 제우스와의 화해를 권한다. 
◎ 프로메테우스는 오히려 제우스가 크로노스에게서 권력을 탈취할 때 자신이 그를 어떻게 도왔는지, 제우스가 파멸시키려 했던 인간들을 어떻게 구원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자신이 ‘불’을 선물한 덕분에 인간들이 여러 기술들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오케아노스가 제우스의 뜻에 따르기를 권하지만 단호히 거부한다. 
◎ 제우스가 암소로 변신시켜 떠돌고 있던 이오가 등장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이집트에 다다르면 고통에서 끝날 것이라고 일러준다. 제우스가 본래의 모습을 돌려줄 것이며, 제우스의 아들 에파포스를 낳는데 그의 후손이 자신을 고통에서 해방할 것이라고 일러준다. 프로메테우스는 코로스에게 비밀을 말해준다. 장차 한 여인에게서 태어날 제우스의 아들이 그 아버지보다 강한 자가 되어 제우스가 자신의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그랬듯이 제우스를 올륌포스의 권좌에서 쫓아낼 것이라고. (프로메테우스의 예언)
◎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보내 그 아들을 낳을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려 한다. 만일 그 여인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으면 제우스가 독수리를 보내 간을 쪼아 먹게 할 것이며, 하데스이 타르타로스에서 영원히 살게 할 것이라고 협박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함구한다. 
◎ 프로메테우스는 코로스와 함께 제우스의 번개를 맞고 하데스의 타르타로스로 내던져진다.

#헤시오도스의 프로메테우스
◎ 호메로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와 ‘노동과 나날’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 행한 기만적인 술책과 인간에게 불을 전한 그에게 제우스가 내린 벌에 대해 이야기한다. 
◎ 헤시오도스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의 원초적인 행복을 상실케 한 장본인이며, 교활한 책략가로 묘사했다. 메코네에서 신들과 인간들이 자리를 함께했을 때,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에게 희생제물을 합당하게 배분하게 한다. 프로메테우스는 황소를 죽여 겉보기에 역겨운 살코기와 내장, 겉보기에 윤기가 흐르고 먹음직스러운 기름 바른 뼈로 나누어 제우스에게 선택하게 한다. 책략을 알고 있었던 제우스는 먹을 수 없는 후자를 선택하고 진노하여, 프로메테우스의 총애를 받는 인간들에게서 불을 거두어들여 간접적으로 보복한다. -> 프로메테우스가 신들 몰래 불을 훔쳐 다시 인간들에게 가져다준다. -> 제우스의 명령으로 헤파이스토스가 진흙으로 여인을 빚고 아테나가 그녀를 치장한다. 최초의 여인 ‘판도라’.(헤르메스가 명명.)  -> 여성의 출현으로 결혼 제도가 도입되어 온갖 재난이 초래됨. 여성은 ‘남자가 바깥에서 힘들게 거둬들인 수확물을 하는 일 없이 탕진하며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거짓으로 교묘한 목소리로 남자를 유혹하는’ 존재.
◎ 판도라 이후 인간은 여성의 몸을 빌려 태어나게 되었다. 남자들은 아이들과 여성의 생존을 위해 평생 노동의 수고를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음. 결과적으로 남자들의 ‘노동의 수고’는 인간에게 불을 되돌려준 프로메테우스의 행위에 대한 보복인 셈.
◎ 판도라가 행한 최초의 행위는, 제우스가 내린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서 ‘희망’을 제외한 모든 악과 질병을 인간 세계에 풀어놓은 것. (노동과 나날)
◎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자 제우스가 직접 벌을 내림: ‘기둥에 결박시키고, 독수리를 보내 간을 쪼아먹게 함.’ 이는 ‘헤라클레스가 제우스의 동의 아래 독수리를 죽이고 그를 해방시킬 때까지 계속된다.
◎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고통과 악의 원인을 프로메테우스에게서 찾는 헤시오도스의 입장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이토록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를 벌한 까닭은 ‘공정한 분배의 몫을 박탈하고 신과 인간 사이의 위계질서를 전도’한 것. 불공정성과 편파성. 불을 다시 전한 것도 신의 권리를 침해한 것. 불에 관한 권한은 헤파이스토스에게 있었다.
◎ 정의는 제우스의 창조물이자 제우스가 인간에게 준 위대한 선물이다. (신통기, 노동의 나날) 불편부당한 정의의 신인 제우스가 신들을 배반한 프로메테우스를 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임.
◎ 헤시오도스의 프로메테우스는 편파성과 교활한 책략으로 황금시대의 종언을 불러온, 결과적으로 인간들에게 고통과 악을 떠안긴 배반자이다.

#아이스퀼로스의 프로메테우스
◎ 고통의 신, 인류의 친구
◎ ‘신통기’는 메코네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를 기만하면서 행한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행위, 프로메테우스로 인해 인간에게 내려지는 고통과 악, 프로메테우스에게 내려지는 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룸.
◎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에서 아이스퀼로스가 주목한 것은 프로메테우스의 파토스(pathos, 고통)이다.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은 너무나 부당한 것!
◎ 제우스는 헤시오도스의 ‘정의의 신’이나 ‘궁극의 통치자’가 아니라, 폭군의 원형으로 ‘프로메테우스에게 부당한 고통을 가하는 신’, ‘비인간적인 모든 것을 표상하는 신’, ‘폭정을 일삼는 신’이다. 제우스는 ‘새로 만든 법’, ‘스스로 규정한’ 자의적인 법으로 무자비한 권력을 휘두른다.
◎ 거의 모든 인물이 제우스에 대해 회의와 증오의 감정을 드러낸다.
◎ 왜 제우스에게 도전하면서까지 인간을 구하고, 그들을 도우려 했는지 아이스퀼로스는 설명하지 않았다. 프로메테우스 자신은 “인간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호의(사랑)와 연민’ 때문.
◎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전함으로써 인간에게 생존을 위한 갖가지 기술을 터득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지적인 능력’을 주었다. 야만인에서 문명인으로 진전하는 데서 결정적인 기폭제가 됨.

◎ 프로메테우스는 지구의 가장 먼 경계에 위치한 “아무도 밟지 않았던 황량한” 땅, 스퀴티스 지역의 카우카소스 산정의 가파른 ‘바위’에 똑바로 선 자세로 결박당한 채, 한순간도 잠도 허용받지 못함.
◎ 프로메테우스는 비로소 자신의 고통을 안타까워할 인간이 한 명도 없는 고독의 정점에서 ‘부당한 고통’을 한탄하며 울부짖는다. 그러다 ‘한 여인’에 대해 함구한 대가로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타르타로스’로 떨어지고 만다.
◎ ‘어떤 신’: ‘어떤 신이 대신 고통 받고 대신 죽어야 고통이 끝날 것이다.’(전령 헤르메스)
◎ (헤시오도스의 두 저작에 따르면, 타르타로스에서도 굴복하지 않자, 제우스가 다시 지상으로 끌어올려 바위에 결박한 뒤, 매일 독수리를 보내 그의 간을 쪼아먹게 한다.)

◎ 헤라클레스: 프로메테우스를 (제우스의 동의를 얻어) 고통에서 해방하는 인물은 이오의 자손이자 제우스의 아들인 헤라클레스다.
◎ ‘어떤 신’ 켄타우로스 키론: 영생의 삶을 이어받은 키론이 히드라의 독이 묻은 헤라클레스의 화살이 다리를 관통하자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다 자신에게 주어진 불멸을 포기하고 프로메테우스를 대신해서 죽겠다고 함. 제우스가 동의함으로써 프로메테우스가 고통에서 해방되고 영생을 얻을 수 있었다. (아폴로도로스의 ‘도서관’)

#프로메테우스의 비극성
◎ 아이스퀼로스는 제우스가 전제주의적인 신이 아니라 중재와 포용으로 통치하는 성숙한 신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을지도 모른다.
◎ 중요한 것은 프로메테우스가 어떻게 고통에서 해방되느냐가 아니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우스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위대한 순교자의 숙명: 프로메테우스의 저항은 ‘희망 없는 반항’이었다. 고통의 의미를 알고 고통에 동참하며 신을 증오하고 그에 반항한 이들은 그가 사랑한 ‘인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코로스인 바다의 님프들, 불을 소멸하는 ‘물’의 존재였다. “모든 영적인 선구자들의 고통”을 표상하는 비극이다.
◎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를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 제우스의 운명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불멸의 신이면서도 필멸의 인간보다 더 비극적인 존재인 프로메테우스, 불멸이 고통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 프로메테우스의 운명이자 제우스의 의지다. 프로메테우스가 불멸의 신이면서도 필멸의 인간보다 더 비극적인 존재인 까닭은 그가 고통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 고통의 신 프로메테우스로서의 정체성과 가치도 사라진다는 것.
◎ 프로메테우스의 비극성은 그의 불멸성에 있을 것이다.

#고통의 인간, 이오
◎ 이오는 이 작품에서 거의 ⅓ 이상 등장하며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그가 당하는 고통(pathos) 때문이다. 헤라의 젊은 여사제 였던 이오의 꿈에 환영이 나타나 레르나의 초원으로 가서 제우스를 만나라고 재촉한다.
◎ 제우스의 뜻에 따른 아폴론의 신탁에 의해, 이오의 아버지 이나코스가 이오를 추방하여, 레르나의 초원으로 향한다.
◎ 쇠뿔 달린 미친 암소가 되어 떠돌던 이오가 카우카소스 산정에 이르러, 아르고스의 망령인 쇠파리에 쏘이며 고통 속에서 울부짖는다.  
◎ ‘중심으로부터의 소외’: 고향에서 추방당해 떠도는 이오와 지상의 외진 곳에서 고통의 형벌을 치르는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은 자기 결단과 그에 따른 자발적인 행위에 대한 대가. 능동적 영웅. 이오의 고통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신들에 의해 무조건적으로 가해진 고통. 수동적 희생물.
◎ 이오의 경우, 신에 의해 동물의 형상이 됨(육체의 소외). 미치광이가 됨(영혼의 소외).
◎ 그리스적 사유에서는 집에서 쫓겨나 광야를 떠도는 것(‘소외’: 자기 집이나 고국에서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고독하게 사는 것.)이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벌의 전형이다.
◎ 자기가 자기의 타자가 된다는 것, 즉 미친다는 것은 소외의 극단적 형태인 ‘자기 분열’을 의미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이오의 자기 분열이 끝나기까지 이오가 감당해야 할 고통스러운 유랑의 여정을 상세히 알려준다. 유럽과 아시아를 거쳐 나일강 하구에 이르기까지 길게 이어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여러 위험이 닥쳐오리라고. 그리고 피해야 할 위험을 일러준다. 나일강 하구의 삼각주가 마지막 정착지가 될 것이라고 일러준다.
◎ 이오가 다른 비극적인 인물보다 더 비극적인 이유는, 단지 제우스의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육체는 동물로 변하고, 정신은 미치광이가 되어 이 세상을 떠도는 존재, 즉 자기 분열과 자기 부재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왜 나는 이오를 언급해야 하는가
◎ 이오는 나일강 하구에서 제우스를 만나 인간의 모습을 되찾고 광기에서 해방된다. 마침내 자기가 된다.
◎ 나일강 하구의 제우스는 과거 레르나 초원의 제우스가 아니다. 이오를 합법적인 아내로 맞아들인다. 둘 사이에서 이집트 왕가의 시조가 되는 에파포스가 태어나고, 이후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그리스 아르고스 왕가의 자랑스러운 후손들이 태어난다.
◎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에서 제우스는 강간자이며, 폭군이다. 이런 모습은 호메로스의 서사시나, 아이스퀼로스의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모습과 다르기 때문에 당시 소피스트의 작품일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 but, 3부작의 마지막 작품에서 화해와 이해, 자비의 신으로 변모했을지도 모른다. 또, 제우스가 인간 종족 전체를 말살하고 다른 종족을 창조하려 한 데는 나름의 원대한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또, 이오에게 내린 시련은 헤라클레스와 같은 걸출한 후손을 탄생시키고 종국적으로 그리스 도시국가의 문명화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 정의의 수단으로 동원되는 힘과 폭력이 정당하다는 인식. “은총은 폭력을 통해 오는 것.” 나중의 은총, 나중의 정의를 위해서라면 지금의 고통과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이 말은  ‘오레스테이아’ 3부작 가운데서 ‘아가멤논’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 아이스퀼로스는 보수주의자, 인종주의자, 남성중심주의자로 규정된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전해준 인간은 ‘남성’이었다. 남성 혐오자인 아마조네스 여인들만이 이오를 친절하게 맞아줄 것이라고 일러준다. 이는 남성주의자 아이스퀼로스가 거대 남성의 표상인 제우스의 희생물인 이오의 비극적인 운명을 남성에 의한 여성의 희생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았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아이스퀼로스가 여성을 폄하하는 작가라는 진단은 적절하지 않다.
◎ ‘아무리 보수적인 남성 작가의 텍스트라도 그 속에 작가의 지배담론에 포섭되지 않는 진실이 잔여로서 존재한다.’(크리스테바)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이오’가 이 잔여이다.
◎ “왜 나는 이오를 언급해야 하는가?”(하우스만) 이오는 우주의 잔인한 힘에 농락당하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조건, 그 비극적 운명을 철저하게 보여주는 인간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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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와 예수.... 프로메테우스라는 원형... 
2019.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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