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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나와 맞는 출판사’를 찾으시나요? 편집자 되기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편집자 매뉴얼 18 - 격주간 <기획회의> 428호

‘나와 맞는 출판사’를 찾으시나요?



〈기획회의〉 427호 기획 ‘3년 차 편집자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는 통렬했다. ‘출판계를 떠난 전 편집자’, ‘잠시 쉬고 있는 편집자’의 육성은 서늘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어디에서 길을 찾아야 할까. 답이 미리 주어져 있을 리 없다. 현실이 어떤가를 냉정하게 인식하고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패러다임을 상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편집자의 커리어와 출판사

다수의, 어쩌면 대다수의 편집자들이 내적 외적 요인에 의해 경력 관리에 실패하고 있다는 얘기다. 3년 차부터야말로 한창 일할 때인데, 업을 떠났다는 것인가? 초년의 사회생활이란 본디 녹록치 않으니 이들이 그것을 못 견딘 것인가? 독자가 줄고, 변화하는 매체 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매출이 줄고, 책은 급하게 만들고, 노련한 브레인이 없고, 경영은 악화되고…… 출판시장의 전반적인 위기 속에서 출판사의 경영 악화가 초년의 편집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인가? 아니면, 출판사가 유독 3년 차 편집자를 많이 찾게 되었기 때문에, 즉 인력 수요가 많아져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가? 3년 차가 아니라 사실은 5년 차, 7년 차, 10년 차가 없는 것은 아닌가?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어 이가 시린 것은 아닌가 말이다. 노련하고 업무 능력이 안정된 경력자(관리자)보다 적은 연봉으로 웬만한 업무를 (적어도 보기에는) 척척 해낼 수 있는 초년의 경력자들이 자주 호명되고 그러다 보니 그들의 고통과 부재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자, 3년 차 편집자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당신의 문제였다. 당신은 지금 몇 년 차인가? 당신은 살아남아야 한다. 견뎌라. 조금 더 멀리 가라. 멀리 보고 호흡을 가다듬어라. 더 멀리 간 사람에게는 그만한 것이 남는다. 그러려면 먼저 당신이 일하는 현실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불가능한 현실을 기대하지 말고, 냉정하게 보자. 출판의 현실에서 가치 판단을 하기 이전에 우리가 인지해야 할 중요 사항은 다음이다.


① ‘출판사는 사장의 것’이다

출판사는 사장의 것이다. 일하는 사람이 회사의 주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옳은 말이 아니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근속 연수가 3년인 직원이 어떻게 주인임을 주장하겠는가? 책을 꾸준히 펴내는 회사 가운데 절반은 편집자가 한 명이거나 없다. 10년, 20년을 한 회사와 함께한 경우가 전혀 없지 않지만, 결코 일반적인 예가 아니다. 재정이 힘들어지면 경영상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쉽게 선택하는 방법이 임금을 체불하거나 사직을 권고하는 것이다. 사장이 경영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오로지 사업주인 사장만이 가장 오래 일한다. 사장이 선택한 경영 방식이 일하는 사람들의 업무 환경을 결정한다. 일하는 사람들이 권한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할 것인가? 일하는 사람들이 헌신해서 좋은 책을 만들어내게 할 것인가? 궁극적으로, 어떤 책을 만들 것인가? 사장이 정한다. 보자, 당신이 전 직장에서 만든 책이 지금 당신에게 있는가? 회사를 나오는 순간, 모두 거기에, 그 회사의 도서목록에 두고 나왔을 것이다. 자기 방식대로 자기 책을 만들려면 사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사를 믿지 마라. 회사가 당신을 지켜주지 않는다. 회사는 일하게 해줄 뿐이지 삶을 윤택하게 해줄 곳이 아니다. 회사가 당신을 고용한 것은 그것이 회사의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지금 장기 근속 중인 까닭은 그것이 회사의 목적에 부합했던 데 있다.


② ‘근속 연수는 3년, 실무 정년은 마흔’이다

근속 연수는 3년, 실무 정년은 마흔이다. 실감 나는 표현이다. 경력이 높아갈수록 근속 연수도 길어지는 것으로 보이는데 실무를 장악하는 능력과, 책임져야 할 범위가 넓어지면, 그만큼 권한도 강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이 말은 업계에서 꽤 오래전부터 말해져 왔다. 2005년에 초판을 찍은 편집 입문자를 위한 책에서도 “편집자는 한 회사에서 길어야 3년이고 39세가 편집자 정년”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편집자 출신의 출판사 대표가 쓴 글이다. 10년이 더 지난 오늘 생각건대, 이는 어느 편집자 개인의 능력 문제로만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출판물 생산구조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편집자가 자기 권한을 어디까지 주장할 수 있는가? 회사가 일하는 사람의 책임과 권한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가? 회사 전체를 운영하는 사장이 생각하는 ‘책’과 직접 책을 만드는 편집자가 생각하는 ‘책’은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른가?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가? 한 권의 책에서도 책임 편집자가 둘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출판사의 최종 편집 책임자가 둘이 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주간과 편집장 또는 팀장 등 위계에 따라서 업무의 내용과 권한 범위가 달라지는 것이고.

신입으로 입사하여 2년 차, 7년 차, 15년 차, 20년 차들이 여럿이 함께 두루 자기 책을 만드는 출판사는, 적어도 우리 사회에는 거의 없지 싶다. 한 출판사에서 7년 차 전후까지 일했다면 그런 곳은 대개 저자군이나 기획 라인, 책의 만듦새가 안정되어 있는 곳이다. 편집자 자신도 자기 분야가 확고한 경우다. 그러면 가끔씩 결원이 생기고 새 사람이 드는 정도를 감당할 만한 곳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런 여유가 없다. 편집자 두세 명, 너댓 명이 일하는 작은 규모의 팀에서라면 새로운 사람을 맞는 것도 일이고 함께 적응하며 자리 잡는 것도 일인데 입사 2년 지나서 그만두곤 한다면 편집 업무의 지속성도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2년쯤 일하고서 이직을 고려한다는 예들을 십수 년 동안 자주 듣는다.

정년 마흔. 출판은 대체로 삼십 대에들 약진하는 직종인 걸까? 그러고서 마흔쯤 되면 연륜을 바탕으로 더 깊이 있는 작업을 해낼 만해지는 건데. 작은 회사에서 그쯤 되면 이제 진득하니 오랫동안 공 들여 책을 만들기도 어렵다. 신간이 빨리 빨리 나와줘야 하니까. 매출이 있어야 월급이 나갈 거고. 마흔쯤 되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기획을 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이런저런 압박감 속에 회사에서 밀려 나온다. 급하게 열심히 책만 만들었다면, 이제 그것들을 모두 놓고, 이력서에 경력 설명 몇 줄을 추가했을 뿐인 채로. 자, 이제 뭐하지? 새로운 조직에 들어갈 것인가? 사장이 될 것인가? 프리랜서 에이전트가 될 것인가?


③ 일할 만한 출판사의 수는 많지 않다

단체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출판사의 수는 3000곳 미만이다. 그 가운데서 직장으로 선택할 여지가 있는 곳은 1500곳 미만일 것 같다. 발행부수로 추산해보면 편집자가 서너 명 이상 근무하는 곳은 500곳 미만이다. 그중에서 보수, 근무일 수, 전문성, 회사 시스템, 의사소통 체계… 당신이 원하는 조건을 갖춘 곳은 얼마나 될까? 그중에서 당신이 지닌 것을 원하는 곳은 얼마나 될까? 그래서 당신이 3년 이상 진득하게 일하게 될 곳은 얼마나 될까?

몇몇 회사의 경우처럼, 회사로서도 직원들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직원들로서도 회사 차원의 전망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의 업무 영역에 집중하면서 회사를 일할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곳이라면 좋을 터이지만. 그래서 회사에서 정년을 맞기도 하고. 그러나 워낙 규모 없이는 그런 환경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수를 해고했다는 곳 가운데서 규모 있는 단행본 출판사가 많았다고 하니 그런 규모는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얘긴데.


정년 마흔, 준비해라

‘내게 맞는 출판사’란, ‘내가 맞추는 출판사’가 있을지언정, 없다. 환상을 버려라. ‘내게 맞는 출판사’는 지금 당신이 떠나고 싶은, 혹은 박차고 나와버렸던 그 회사의 대척지에 있는,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회사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라. 회사를 활용해라. 회사는 책을 만들게 해주는 곳이다. 편집자로서 단권을 홀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우쭐하지 마라. 어느 30년 차 편집자의 말대로, 5년 차도 되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직 ‘보조 편집자’다. 자기 힘으로 힘 있는 저작자들을 움직여 유의미한 기획들을 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보조 편집자’로서 열심히 일하자. 그러자면 당신 곁에는 함께 일하는 ‘선배 편집자’가 있을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일하려고 노력해라. 일과 사람은 회사의 경계를 넘는다.

일자리를 찾는다면, 회사 정보를 충분히 모아라. 물론 당신 자신을 파악해라. 그리고 구직 중임을 소문 내라. 경력과 전문성, 의지력을 알려라. 주변의 도움을 얻어라. 충분히 ‘알고’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곳이다, 아니다 추상적인 ‘판단’은 현실을 왜곡한다. 아는 것이 중요하다. 희망연봉이며 나의 조건도 제시하라. 주는 대로 받지 말고 협의해라. 일단 들어가서는 3년은 일한다. 석달, 반년, 그리고 성과를 내면서 한 해씩 가는 거다. 그러나 경력이 쌓일수록 한곳에서 좀 더 오래 일해라. 어디든 적응 기간이 있고, 새로운 작업이 시작되고, 그 과정이 결과를 얻고, 평가를 얻어 진정한 경력이 되도록. 새 사람들과의 호흡이 안정되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갈등도 겪고 나야 의미가 있다.

자신이 어떤 편집자인지 알아야 한다. 일하는 동안에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라. 해마다 이력서를 갱신해라. 자기 업무를 평가해라. 자기가 만든 책의 목록을 관리해라. 편집일지를 써라. ‘○○○ 회사의 편집자’ 모모 씨가 아니라, 그냥 ‘편집자’ 모모 씨로 일해라. 원고를 대할 때, 저작자를 대할 때, 디자이너를 대할 때, 마케터를 대할 때, 에이전시, 인쇄소, 제본소, 지업사, 서점, 신문사 등 거래처를 대할 때, 책의 만듦새를 갖출 때, 새로운 기획을 할 때, 책을 읽을 때, 공부를 할 때, 동료 편집자를 대할 때, 상사를 대할 때, 사장을 대할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세상에 나아갈 때…….

회사는 당신 것이 아니고, 당신이 일할 수 있게 해줄 뿐이다. 마흔이 되어서 더욱 힘 있게 일하실 수 있도록, 조급해하지 말고 멀리 보고 큰그림을 그리며 나아가셨으면 좋겠다. 자기 일과 사람을 지키는 방식으로 일하셨으면 좋겠다.(201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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